부활주일 설교, 마가복음 16장 6절,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는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이 날은 단순히 기독교의 절기가 아니라,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복음의 정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없이는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구원도, 영생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부활의 선언이 처음 선포된 자리가 바로 오늘 본문 마가복음 16장 6절입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이 말씀은 천사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전한 첫 번째 부활 메시지입니다. 짧지만 이 말씀 안에는 부활의 실재, 승리, 그리고 변화된 삶에 대한 복음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중심으로 부활 사건의 역사성과 신학적 깊이를 함께 살피며, 이 부활이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할 복음인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그 질문이 오늘 설교의 주제입니다.
놀라지 말라: 부활은 약속의 성취입니다 (마가복음 16:6)
본문은 "놀라지 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조절이 아닙니다. 이 말은 신학적으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초월적 사건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찾은 이유는 죽은 예수를 기름으로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러 차례 자신이 고난 받고 죽은 뒤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 8:31, 9:31, 10:34).
그렇기에 이 천사의 말은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셨다는 선포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예언은 공허한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섭리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이 부활은 시편의 예언, 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요나의 표적을 포함한 구약 전체가 향해온 궁극적 지점입니다(시편 16:10, 이사야 53:10, 마태복음 12:40).
천사가 말한 "놀라지 말라"는 말은 신자의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세상은 늘 예기치 못한 고난과 죽음을 보여주며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을 초월하여 성취된다는 사실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모든 약속의 증표입니다.
그가 살아나셨고: 부활은 실재한 역사입니다 (마가복음 16:6)
"그가 살아나셨고"라는 선언은 초대 교회가 붙잡았던 복음의 가장 중심입니다. 이것은 단지 감정적인 위로나 영적인 교훈이 아닙니다. 실질적이며, 역사적이며, 육체적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죽으셨고, 실제로 무덤에 묻히셨으며, 실제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5:3-4). 초대 교회는 바로 이 부활의 사실을 목숨 걸고 증언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은 말씀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로마서 1:4).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은 좋은 선생일 수는 있어도, 우리의 구세주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셨기에, 그분은 죄를 이기셨고, 사망을 깨뜨리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역사성을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도, 상징도 아닙니다. 이는 수많은 증인들과 기록에 의해 확증된 사실입니다. 빈 무덤은 그 증거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변화는 그 열매입니다. 믿음은 사실 위에 세워질 때 견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역사성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부활은 새로운 존재 방식입니다 (마가복음 16:6)
천사는 분명히 말합니다.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이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의미 이상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제 더 이상 죽음의 자리,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무시는 분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새로운 존재 방식, 즉 부활체의 존재로 들어가셨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생명으로 살아계심을 뜻합니다.
이 부활체는 단지 이전 상태로 회복된 육체가 아닙니다. 이는 영광스러운 몸입니다(빌립보서 3:21). 더 이상 병들지 않고, 썩지 않으며, 죽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는 장차 우리에게도 약속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말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고린도전서 15:42).
여기 계시지 않다는 말은 단지 예수님이 무덤에 안 계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곧 부활하신 주님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로 들어가셨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무덤에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실존적 도전을 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찾는 방식이 과거형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늘도 ㅇ리리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성령으로,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 주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부활은 증거와 확신을 줍니다 (마가복음 16:6)
천사는 여인들에게 무덤 안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이는 증거를 직접 보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길에 이성과 감정, 그리고 사실을 함께 사용하십니다.
빈 무덤은 부활의 첫 번째 증거입니다. 여인들은 빈 무덤을 보았고, 제자들도 그것을 확인하였습니다(요한복음 20:6-8).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는 그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졌습니다(요한복음 20:27). 그 결과, 제자들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은 실재하는 증거를 동반하며, 그 증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신앙의 확신ㅇ[ ㅇ 되도록 돕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너희가 보았던 절망의 자리에, 이제는 생명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무덤은 이제 부활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 속에도 무덤과 같은 자리가 있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느껴졌던 자리, 도무지 변화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영역,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 무덤을 비우셨고, 그 자리를 생명의 자리로 바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결론: 부활을 사는 신자 (골로새서 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나셨고,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역사적 사실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이 진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존재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로새서 3:1).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 아래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부활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산다는 것은 날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며,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삶은 고난이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었고,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 부활을 믿는 데서 머무르지 말고, 부활을 살아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그 부활을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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