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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설교, 사도행전 2장 24절,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케리그마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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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복음의 본질입니다. 부활은 단지 한 인간의 생명 회복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 사건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어 온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사도행전 2장 24절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예루살렘에서 담대하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한 구절에는 하나님의 주권, 메시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연한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이며, 구약의 예언들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는지를 함께 확인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 부활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신 하나님 (사도행전 2:24)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사망의 고통'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산고', 즉 해산의 고통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마치 아이를 낳는 산모처럼 그리스도를 품고 있었지만, 결국 그분을 붙잡아둘 수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선언은 부활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10:18),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사도행전 3:15). 이는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과 능력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야 했는가? 그것은 그분이 의로우신 분이셨고, 죄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죄의 삯이요, 죄 없는 이에게는 그 권세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로마서 6:23).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며(고린도후서 5:21), 그러므로 사망은 그분을 잡아둘 법적 근거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망이 메시아 위에 권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바입니다.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도행전 2:24)

본문의 중심 선언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는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말씀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연적인 구속 계획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본성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로서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6편 10절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편 16:10).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이 말씀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임을 밝힙니다(사도행전 2:27-31).

 

다윗은 죽어 무덤에 묻혔고, 그의 시신은 썩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썩지 않으셨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의 예언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증명하는 가장 분명한 사례입니다. 즉,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영원한 생명의 주이시며, 사망은 결코 그분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부활 사건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메시아가 고난받고 다시 살아날 것을 반복적으로 예고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예언들의 완전한 성취였습니다.

 

구약 속에 감추어진 부활의 그림자 (이사야 53:10)

예수님의 부활은 시편뿐 아니라, 구약 전반에 걸쳐 암시되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사야 53장을 보면, 고난받는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사야 53장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여호와의 뜻이 그의 손에서 형통하리로다"(이사야 53:10).

 

이 말씀은 고난받고 죽은 종이 그 이후에도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속건제물로 드려졌지만 씨를 보게 되고, 날이 길어진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도 살아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메시아의 부활을 예언하는 구절로서 신약의 사도들은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였습니다.

 

또한 요나의 이야기도 부활의 예표로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 12:40). 요나는 물고기 속에서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었고, 다시 살아나듯 육지로 나왔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예표였습니다.

 

이 외에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창세기 22장),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창세기 37장),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에스겔 37장) 등은 모두 부활에 대한 영적 상징을 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언약 성취입니다 (고린도전서 15:3-4)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단지 예수님의 고유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하신 언약의 성취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 15:3-4).

 

이 말씀에서 두 번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대로"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모두 구약 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이며, 그 예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연도 아니고, 급작스러운 개입도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아브라함과 다윗과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이루신 구속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인간은 그 언약을 깨뜨리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 언약을 지키십니다. 부활은 그 언약의 클라이맥스이며, 모든 구약의 예언이 아멘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결론: 부활을 사는 성도의 삶 (로마서 6: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의 예언들이 성취된 사건이며, 동시에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로마서 4:25), 또한 그분과 함께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4절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로마서 6:4).

 

우리는 단지 부활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의 생명을 실제로 살아내야 합니다. 이는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는 소망 없는 세상 가운데서도 변치 않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구약에서 예언된 참된 메시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 언약이 결코 무너지지 않음을 증명하신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도 그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갑시다. 어둠 가운데서도 빛을 바라보며,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노래하며, 이 세상의 유한함 속에서도 영원의 생명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부활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 살아내야 할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망은 결코 그분을 붙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이 영광의 진리를 붙들고, 오늘도 부활을 살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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